김일신 목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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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바다를 도버 해협이라고 부릅니다. 영국 도버(Dover)와 프랑스의 칼레(Calais)는 이 도버해협을 잇는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중세로부터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에게 정복된 이후, 양모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습니다. 1558년 메리1세가 다시렸던 시대에서 지금의 프랑스의 영토가 되기까지 2세기 동안 영국이 다스렸던 항구 도시였습니다.

 

14세기경에는 영국이 프랑스의 땅 3분의 1일을 지배하고 있었고, 이런 영국을 내쫓으려는 프랑스가 1347년에서 1453년까지 백년이나 싸워서 이를 ‘백년전쟁’이라고 합니다. 이를 종식시킨 영웅이 바로 잘 알려진 소녀 ‘잔 다르크’입니다.

100년 전쟁 초기인 1345년 영국의 에드워드3세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진격하다 칼레에서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서 11개월의 공방을 벌이게 됩니다. 이 엄청난 공방의 끝은 칼레 시민들의 항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11개월 동안 전쟁으로 여러 가지 손실을 보게 된 에드워드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 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전달했습니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쳐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제일 먼저 나서고 이어서 시장과 법률가 등 귀족 계급 5명이 동참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 Georg Kaiser 1878~1945)는 그의 희곡“칼레의 시민들(1914년)에서 7명이 나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명중 누가 빠질 것인지가 논의하다 제일 늦는 사람은 빼고 가리고 했으나, 다음날 생 피에르가 나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잠시 흥분하였으나 알고 보니 그는 시민들의 결의한 의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미 집에서 자결을 했다고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ilge)”란 말로 대변하게 됩니다. 이 말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원래 초기 로마시대의 왕과 귀족이 보여준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고휘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물율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귀족들으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아르다는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실천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역의무라든가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 한다든가 하여 그들의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전통을 만들어 갔으며 나라에서 장려책을 사용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고대 로마 뿐만 아니라 근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정신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국 왕실에 속한 귀족들도 징병제의 대상이 됩니다. 반드시 영국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들의 자녀들은 영국 병역법과 왕실 내부 규율에 따라 희망하는 일시에 장교의 신분으로 군복무를 마치도록 되어있다고 하며, 이것이 영국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도시 칼레에서 1884년 위에 언급된 이들의 모습을 동상 같은 조각으로 남기고자 하고 로댕이 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1년여 동안 작품 구상을 하고 1차 모형은 별 이야기가 없었으나, 2차 모형을 보고는 말들이 많았답니다. 영웅이 아닌 인간의 모든 고통을 간직한 그들의 모습, 결연하다 못해 침울한 모습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모습까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일줄 알았던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로댕이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이 조각에 받침대를 설치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고도 합니다. 후에 로댕은 “너무 아름답게 표현했다면 사실성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너무 높은 곳에 설치했다면 영웅성을 찬양하느라 진실을 잊게 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위의 삶을 원하고 지향합니다. 많은 부를 축척하고자 비도덕적으로, 비윤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때가 많습니다. 고위 관료를 뽑기 위해 청문회를 하는 대한민국에 소위 고위 관리들의 대상자들 사이에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찾을 수 잇기를 기대 합니다. 로댕이 표현한 자들은 영웅이 아니라,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최소한 자신들도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며, 그런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대표였다는 것을 나타낸 듯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특히 많은 것을 누리는 자리에 있는 분들도 앞장서 책임을 지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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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신 목사

유럽크리스천신문 영국지부장

생터사역원 런던지부장

예드림 커뮤니티교회 담임

yedreamchur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