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영 목사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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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문: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왜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합니까?

 

답: 분명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한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구원의 열매에 의해서 우리 믿음이 확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건한 행실에 의해서 이웃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32주일부터는 감사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로 인한 인간의 비참함과 거기서부터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구속에 대한 말씀들을 보아왔습니다. 이제는 구속함을 받은 신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구속에 대한 가르침을 사도신경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십계명을 살펴볼 텐데 이것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속받은 자가 감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해서 행위로 구원 받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는 반대로 구속함을 받았기에 은혜에 감사하며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십계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선행에 대한 성경적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신자들이 선행과 구원에 대한 관계를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많은 혼란과 엉뚱한 신앙의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자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면 더 이상 율법(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과 다른 하나는, 신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어도 율법(십계명)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두 가지 주장은 틀린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란 선행을 말합니다. 즉, 선행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구원을 얻은 사람이 맺는 열매입니다. 사도 마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6)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역대상 16:28). 신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착한 행실은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선하심을 인정하도록 하여 줍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12). 신자들 각자는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취하신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신자는 세상에서 빛이며 소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신자는 빛이며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요,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빛이 빛을 비추지 못하거나 소금이 썩는 것을 방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무익한 것일 뿐입니다.

 

신자들이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착한 행실'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는 모든 의(義)를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빛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이 선한 행실로 인해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두려워해서 빛을 감추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같이 빛을 비추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신자들이 살아가는 이유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선행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신자는 반드시 선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87문: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으며 회개하지도 않으므로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답: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정한 자, 우상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적질하는 자, 주정뱅이, 거짓말쟁이(비방하는 자), 강도 등과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지 못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의 말씀같이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악을 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기를 치며, 불법을 자행하며, 술 취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은 위선자의 모습입니다. 위선자는 성도의 가면을 쓰고 악을 행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자입니다. 염소의 탈을 쓴 양일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들어 갈 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2:15) 여기서 말하는 '개들'은 성경에서 더럽고 악한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 표현으로 신명기 23:18절에서는 남창을, 마태복음 15:26절에서는 이방인을, 빌립보서 3:2~3절에서는 유대인의 율법을 강요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어 이 '개들'이 하나님의 뜻과 통치하심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개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부류의 사람들, 즉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이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자들의 명단(요한계시록 21:8)에 있는 자들과 동일합니다. '개들'과 불못에 들어갈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두루마기를 빨아 구속에 참여한 자들과는 달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요한계시록 20:13-15).

 

계속해서 성경 말씀을 보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19-21)

 

여기에서 분명하니라는 말은 그러한 행동들이 쉽게 눈에 드러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그러한 일들이 죄를 따라가는 본성에서 생겨나며 결코 거듭난 신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육체'라는 말은 육욕적이고 성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구체적인 양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음행'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또한 '더러움'은 도덕적으로 정결치 못한 것을 의미하고, '호색'은 정숙함을 공공연하게 경멸하는 파렴치한 태도를 뜻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성에 관계된 악행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의 '술수'는 악과 은밀하게 결탁하는 것을 의미하고, '원수를 맺는 것, 시기, 당 짓는 것, 분리함, 투기' 등의 일은 모두 극대화된 이기심 때문에 타인을 해치려고 하거나 그들의 것을 탈취하는 악행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본문 20절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사랑의 결핍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자리에서 인간은 항상 자기만족만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그것을 위해 이웃들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21절에는 주로 술 취함과 연관된 내용들이 열거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이 '술 취함'인데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모든 일을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방탕함'은 술에 취하여 흥청망청 떠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는 진리를 악용(惡用)하여 이 세상 향락을 좋아하여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신자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나 이제는 전심으로 율법을 지켜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필자 : 최찬영 목사
다윗의 교회 담임
www.churchofdavi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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